(((10))) 텐!
















 

가능한 여정들  뮤지션‘10’(텐)


‘10’(텐)은 뮤지션 ‘있다’와 ‘마르키도’로 구성된
익스페리멘털 뮤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팀이다. ‘있다’는 한국의 여성뮤지션으로서 장난감악기와 보컬의 소리를 실험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구축했고, 힙합뮤지션과의 콜로보레이션 앨범과 6.70년대 한국음악을 재해석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마르키도’는 일본의 뮤지션으로, 랩탑을 이용해서 노이즈 음악을 하고 있고 ‘데모크리토스 Democritus’시리즈를 발표 한 바 있다. 두 뮤지션의 결합인 ‘10’은 한국에서의 활동 뿐 아니라 2005년부터 국경을 넘어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며 라이브 공연과 레지던시를 활동을 활발히 전개 하고 있다. 이 글 첫머리에 ‘있다’와 ‘마르키도’를 한국과 일본의 뮤지션으로 소개했지만, 사실 ‘10’이 실천하고 있는 국경 너머의 활동들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규정을 무색하게 만들며 경계를 넘나든다. 이 인터뷰는 ‘10’이 시작된 배경과 음악적 태도, 그 활동 내용과 범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마도 이 인터뷰를 읽은 후 그들의 음악과 만난다면 이해의 범위가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있다+마르키도=10”

모라: 두 분은 ‘팀’이지만 각자 솔로활동도 하고 계신데요. 먼저 개인 작업 소개를 부탁드려요

있다: ‘있다‘는 자신의 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중심은 음악이에요. 기존의 유통방식과 다른 형식의(특히 디자인 면에서)앨범을 만들어서 팬들에게 선주문을 받고 발매하거나, 한정판매 형식의 게릴라성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어요. 퍼포먼스 아티스트나 마임아티스트, 무용가등과 함께 작업을 많이 했고요. 홍대 인디씬에 접근한 후로는 ’불가사리‘라는 실험음악 이벤트의 레귤러 멤버가 되면서 우리나라와 해외의 실험 음악가들과 많이 만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실험적이고 즉흥적인 모습에 깊은 감흥을 받아서 장난감 악기로 표현하게 되었어요. 장난감 악기를 사용하고 있는 음악가’사토 유키에‘씨나 ’토이데쓰‘(호주의 밴드)의 표현 방식도 좋지만, 저는 제가 고르는 장난감 악기를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재밌게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을 생각하죠. 써킷벤딩도 요즘 유행하지만 그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저에게 가장 중요한 악기는 오르간이고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이 좋아요.

마르키도: 음악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발표하지 않은 것이 굉장히 많아요. 일본 시코쿠의 에히메 현 출신이고 1996년부터 얼터너티브 록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로 시작했어요. 당시 스스로의 음악성에 대해 고민한 후, 밴드에서 탈퇴를 하게 됐죠. 가장 큰 영향을 준 뮤지션이 ‘MAGICAL POWER MAKO’라는 70년대의 전설적인 뮤지션과 ‘JUKE’라는 일본의 뮤지션들이에요. ‘JUKE’의 앨범을 듣고 다음날 바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사러 갔었고 홈 레코딩을 시작했어요.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와 시퀀서를 사용하고 2002년에 매킨토시를 처음 썼는데 그때가 ‘랩탑 뮤지션’이라는 장르가 처음 생겨났을 때인 것 같아요. 그 후 ‘부토 댄스‘와 ‘랩탑 익스페리멘털 뮤직‘이라는 컨셉으로 '마르키도'를 구상하고 부토 댄서를 영입해서 ’마르키도‘라는 팀을 만들고 1년간 라이브 활동을 했어요. 그 활동 중에 전설적인 뮤지션 ‘MAGICAL POWER MAKO’와 꿈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을 제작하게 되죠. 그러던 중 그 마코씨가 어느 날 '너는 한국에 가라'라고 말하셨어요. 사실 당시에 한국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없었던 상태였거든요. 그 이후에 마코씨가 한국에 계신 음악가 사토 유키에씨를 소개해주셨고 2004년 10월에 한국의 불가사리 이벤트에서 공연하게 됐죠. 2004년 여름부터는 ‘마르키도’ 솔로 프로젝트가 시작 되었고 2004년부터 ‘데모크리토스 Democritus’ 시리즈를 발표하게 되는데요. 이 시리즈는 익스페리멘털 뮤직에 대한 열의가 더해지고 철학과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 불교의 ‘부다’ 발자취를 더듬어 가고 싶어서 인도의 불교신자들이 가는 성지를 방문하게 됐어요. 인도에 있을 당시, 날것 그대로인 인간의 에너지에 충격을 받고 돌아온 이후로 음악 작업을 재개했죠. 그래서 시작한 음악이 노이즈 뮤직이에요. ‘데모크리토스’라는 작업은  ‘Haniya Yutaka‘라는 일본 소설가의 에세이 속에 등장한 데모크리토스, 그리스의 철학자를 직감적으로 캐치해서 작업했어요. 데모크리토스가 인도에 여행을 하는 컨셉으로 그리스에서 인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요. 2년에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있고 2005년 ’마르키도‘ 솔로로 한국, 중국, 캐나다, 미국 투어를 끝으로 라이브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앨범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고요. 공연기획과 일본 음악잡지에 중국의 ’익스페리멘털 언더그라운드 뮤직씬‘의 레포트도 기고하고 있어요..


모라 :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르
키도씨의 경우 라이브를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마르키도: ‘마르키도’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표현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음원 작품에 집중하고 있고 새로운 라이브에 대한 그림도 그리고 있고요. ‘마르키도’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요


모라: 그동안 마르키도씨의 초기 활동은 발표되지 않았었는데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개인 작업에 대한 이야기 잘 들었어요. 그럼 ‘10’으로 결성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텐: 2005년 4월이었네요. 음악가‘사토 유키에’씨가 세계 여러 나라의 노이즈 뮤지션들이 한국에 온다며 ‘마르키도’씨를 초청했어요. 그 당시 ‘있다’는 교통사고에서 벗어나서 ‘마르키도’씨와 같은 날 공연을 하게 됐죠. 처음 ‘마르키도’의 솔로 공연을 보고 꼭 같이 작업을 하고 싶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어요. 공연자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아예 한눈에 반해버렸죠. 그 후 몇 차례 콜라보레이션 공연을 했고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을 해서 팀을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있다’의 존재에서 1을, 마르키도의 마르(원, 윤회를 뜻합니다. 키와 도는 희노애락의 희와 노를 뜻합니다)에서 0을 따와서 ‘10’이라는 이름이 완성되었어요. 공교롭게도 그날이 10월 10일이었습니다. ‘10’은 처음 시작했을 때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이 모토였어요.


모라: 처음 서로의 음악에서 어떤 매력을 느꼈는지 궁금한데요.

마르키도: ‘있다’의 보이스는 아름다워요. 저한테 없는 것을 볼 수 있었고요. 

있다: ‘랩탑’ 하나로 공연하는 뮤지션들을 만나왔지만 ‘마르키도’의 노이즈에는 생동하는 리듬이 있었어요. ‘있다’에게 부족한 리듬을 마르키도와 함께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지요.


모라: 어느 인터뷰에서 두 분은 좋은 의미에서 ‘라이벌’이라는 표현을 하시던데요. 콜라보레이션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내시나요

텐: 피드백에 대한 피드백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죠. 최종적으로 좋은 밸런스를 획득할 수 있도록 극도로 집중하며 노력하고 있고, 우연 혹은 기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운드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해요.


모라: 그럼, 솔로와 팀으로서의 활동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계시나요

텐: ‘10’의 작업은 여러 나라를 투어하면서 만나는 모든 현상들에 반응하고 있어요. 리얼 타임 업데이팅을 하고 있는 거죠. 반면 솔로 작업은 시간을 두면서 자신과 만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고요. 최근에는 이름을 (((10)))으로 업데이팅 했는데, 3.11 대지진 이후로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면서 이름을 바꾸게 되었고 앞으로 음악을 통해서 들려드리고 싶어요.


모라: ‘10’의 앨범을 순서대로 들어보면 소리와 음악이 계속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텐: 모든 앨범에서 같은 사운드의 음악을 보여주는 밴드도 있지만 ‘10’은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어요. 공연에서도 디테일은 항상 달라요. 아직 실현하지 못한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있기 때문에 결과는 바뀔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모라: 전체 앨범에서 ‘NOMAD’앨범의 경우는 이전에 발표했던 'UFO', '키치’앨범보다 더 친절해진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드는데요.

텐: ‘NOMAD’는 한 장의 얇은 막을 뚫고 리스너들에게 도달한 경우가 아닐까 생각해요. 만들 당시에 의식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고 ‘노마드‘라는 곡을 앨범에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상당 기간 고민하기도 했으니까요. 이 앨범이 첫 스튜디오 레코딩 앨범인데요. 서로 역할을 분류하고 좋은 부분을 더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작업했고, 익스페리멘털 뮤지션들의 음악이나 공연은 재미가 없다‘라는 명제에서 벗어나보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어요. ’10‘은 실험을 하든,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내든 대중음악의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고 할 수 있죠. 학습 음악(아카데믹)과 대중음악, 둘 중에 저희는 대중음악의 범위이죠. 음악 마니아층도 결국은 ’대중’이니깐요.


모라: ‘10’의 음악에서 두 분의 콜라보레이션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마르키도씨의 경우 섬세한 소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 구축시켜나가시는 거 같은데요. 소리를 구성하고 만들어내는 방식이 궁금해요

마르키도: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미묘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요. 예를 들어 미니멀, 드론, 전자 음악(요즘은 댄스 뮤직도 전자 음악의 범위에 들어있지만, 지금 말하는 전자 음악은 순수하게 전자 음악입니다.)이라는 범위 안에서 표현하고 있죠. 한 가지 음으로 공격성을 가지거나 작은 소리로 광활한 지점을 연상시킨다든지, 음향적인 요소가 강해요. 음악으로 무엇을 표현하는 작업은 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우주'를 표현하기 위해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작업은 하지 않죠. 대신, 소리 자체가 표현이 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소리가 말을 하고 표현을 하는 거죠.


모라
: 그리고 ‘있다’씨의 보컬은 곡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해석하는 기준이나 방식이 있다면요.

있다: 순간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순간의 공기, 기분, 언어의 질감, 존재했던 사람들, 그것에 반응하죠. 녹음할 때는 당시의 공기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사운드를 빼거나 첨가하고 비틀기도 하고요. 직접 만든 ‘시’를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음악을 하게 됐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접근 방식이 음악적이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어요.


모라: 최근에 내신 앨범 ‘
NATUREPLEX’는 여러 가지 양념들을(소리) 전투적으로, 적극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인상을 받았어요. 있다씨의 보컬에서 우선 전면적으로 느껴지죠.

있다: 이 앨범을 만들 당시 ‘아지트’(문화단체)에서 레지던시를 하고 있었는데 ‘영 파워’랄까요 그런 것을 느꼈어요. 한국에서 공연하면서 만난 분들 중에 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저희보다 윗세대였거든요. 그 분들과 함께 작업하려면 제약이 많았죠. 그런데 ‘아지트’에서는 저질러보자 하는 마음이 컸어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고 ‘NATUREPLEX’ 앨범 작업도 ‘아지트’의 스튜디오 쓰는 동안 만들게 됐고 여러 가지 결과가 나와서 고르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요.


“국경너머, 경계너머”


모라: 두 분의 작업은 여러 나라를 이동하며 진행되는데 그 여정들이 앨범에 주는 영향도 클 거 같아요

있다: 앨범 ‘UFO’는 아시아 투어의 기록이고 ‘NOMAD’와 ‘NATUREPLEX’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하면서 녹음했어요. ‘NOMAD’앨범의 부클릿에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들어 있지요. ‘NATUREPLEX’의 경우는 유럽 투어하면서 제목이 바뀌게 되었는데요. 처음엔 ‘NAYUTAPLEX’였는데’ 자연에 너무 감동을 받아서 ‘NATUREPLEX’로 바꿨어요.


모라: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계신데 한국에서의 활동이 ‘10’에게는 어떤 의미이고 활동 방식도 좀 알려 주세요

텐: 가장 처음에 한 공연은 지금은 없어진 ‘AURA’라는 클럽에서 했어요. 통영국제음악제, 프린지,(라이징 스타 상 받았어요 (자랑))등 여러 아트페스티벌에서 공연했고,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투어 끝나고 녹음했던 음원들 정리해서 앨범 내고 투어를 했죠. 익스페리멘털 적인 요소가 강했던 때였지요. 아트 페스티벌에서는 너무 아방가르드하다 혹은 너무 시끄럽다 등의 (한국의)반응이 많았고, 반면 해외에서는 호평을 받던 시기였네요. ‘NOMAD’앨범 작업이 끝나고 한국에서 공연하면서 ‘10’의 팬이 늘게 되었고,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팬들도 늘어났어요. 그리고 이듬해 중국의 거대 인디 레이블(익스페리멘털 뮤직 전문 레이블) ‘Maybe Noise’에서 ‘KITSCH’라는 앨범을 발표하게 되면서 해외 활동이 많아졌죠. 한국에서는 외국인 공연 기획자에 의해 공연 초대를 받기도 하고 앨범을 발매할 때 공연을 만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한국의 인디 뮤직씬이라는 돗자리가 있다면 ‘10’은 앉을 자리가 없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모라: 어떤 이유 때문 인가요

텐: 한국에서 행해지는 음악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돼요. 팝(록 포함)혹은 아카데믹이죠 ‘익스페리멘털 뮤직‘도 대학에서 학습된 것을 하는 뮤지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 그런데 ’10‘은 실험적인 팝, 혹은 팝 적인 실험음악이라는 수식을 달아야 해요. 이런 미묘한 위치의 음악은 ’씬’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요. 음악 역사 중에서 '뉴웨이브'라는 시대가 한국에서는 이해되지 않은 듯해요. '뉴웨이브'의 역사는 가치관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록 음악이 너무 커져버려서 그 반동으로 등장했죠. 동시대의 한국은 레코드가 불타고 있었고, 정부에 의해 문화적인 탄압이 많던 시기라 자유로운 예술 활동에 제약이 많았고, 아직도 문화적 상황은 짓눌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모라: 제약의 반동으로 록음악을 아주 대중적으로 수용했던 거 같아요

텐: 리얼 펑크가 없었죠.


모라: 인디 음악씬 안에서도 다양한 음악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일까요.

텐: ‘프리재즈’나 ‘클래시컬 뮤직씬’의 현대음악 쪽에서는 그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돌아가신 김대환 선생님 이라든가 강태환, 박재천, 미연, 박창수 등등의 프리 뮤직을 행하는 음악가들이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 크게 조명 받지 못하기도 했고, 90년대에 이야기되던 인디 뮤직이라는 카테고리에 그들을 넣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요


모라: 그런 상황 속에서 ‘10’은 한국 음악씬에서 포지션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나요

텐: ‘서브 컬쳐‘에 대해서 아시나요? 일본에서는 아카데미즘의 반동으로 ’서브 컬쳐‘를 칭하는데요. 훈육되지 않은, 자유적인 표현을 모토로 해요. ’서브 컬쳐‘, 혹은 키치적인 표현을 하는 한국의 아티스트와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 그런 아티스트들이 늘어나서, 후에 ’10‘이라는 팀을 보고 ‘자유로운 표현을 하고 싶어졌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가장 기쁜 일이겠죠. 한국에는 퍼포먼스 아티스트가 많고 재미난 작업을 보여주는 작가와, 음악은 클래식 음악이나 메인스트림을 선호하는 작가가 많아요. 한국에서 음악은, 대중적이거나 부르주아 적인 것. 그 두 가지뿐이라는 생각에 여러 번 부딪쳤어요. 인디라는 정신은 어떻게 자신의 것을 표현하고 유통시키는가에 대해서 고민한다고 해야 할까요. 거대 레이블에 속하면서 음악이 팔리게 되기 전 단계가 인디 뮤직씬에 모여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것. 그것이 ‘인디’라는 것의 접근방식입니다.


모라: 사실 ‘10’은 해외에서 활동을 놀라울 정도로 하고 계신데 처음 시작이 궁금해요

텐: 인디밴드의 네트워크는 국경과 경계가 없어요.(마르키도) 왜냐면 비지니스적이지 않으니까요. (((10)))이 가장 먼저 간 곳은 중국이에요. 작업을 소개하는 프로모 머티리얼을 만들어서 관계를 갖고 있던 큐레이터 친구에게 보냈고, 음악에 관심을 가진 친구에게서 페스티벌 초대가 왔어요. 그곳에서 뮤지션들을 만나고, 함께 공연하고 앨범을 만들고요. 그런 활동들이 다른 곳에도 알려지고 됐어요. 또,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유럽의 페스티벌 혹은 공연 기획자들에게서 초청이 오기도 해요.


모라: 주로 어떤 작업들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텐: 라이브 활동이 중심이고,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기간 동안 앨범을 만들기도 했고 페스티벌과 이벤트에서 만나는 뮤지션과 아티스트와 교류. 다국적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초대받아 참여하기도 하고요. 작업이 마음에 드는 뮤지션과는 함께 스튜디오 혹은 라이브 세션을 갖고 그걸 기록해서 다음 앨범으로 만들기도 해요. 마르키도씨는 음악씬을 관찰하면서 음악잡지에 글을 쓰기도 하고요. 정말 시대가 바뀐 것 같아요.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미국과 영국이 만들어낸 음악이 절대적이었던 시대가 존재했었잖아요. 요즘은 미국에서 오리엔털 테이스트를 첨가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밴드가 인기를 얻는 경우도 많고, 컬쳐 믹스의 경우 아시아 뮤지션이 훨씬 독특한 결과를 낳는 거 같아요. 대등한 위치에서 신선한 충격과 영향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게 저희가 원하는 것이에요.


모라: ‘10’을 통해서 인디밴드의 네트워크가 국경이 없다는 것은 짐작할 수 는 있지만, 반대로 국경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거든요.

텐: 예를 들어서, 어떤 밴드가 우리는 ‘홍대의 인디밴드’다, 혹은 ‘부산의 인디밴드다’라고 말한다면 그 지점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는 거죠. 하지만 굳이 지정하지 않는다면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10)))은 처음부터 어떤 곳에 거점을 둔 밴드가 아니고 ‘있다’와 ‘마르키도’의 콜라보레이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시작했었으니까요. 스스로를 정립하려면 많은 것을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얻어지는 게 많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람과 음악,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데 투자하고 있어요.


모라: ‘10’은 ‘실험적인’, 혹은 ‘새로운 음악’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시는 거 같아요. 그것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 인거 같기도 하고요. 

텐: ‘실험’이라는 것에 갇히지 않는 것이요. 불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실험하지 않는 것이 실험이다’ 당연시되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고,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건 실험이 아니라 관찰이잖아요. 우리는 관찰이나 몰입의 도중에 발생하는 ‘어떤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지점들을 재배치하고 섞고, 여러 개의 레이어를 함께 방출해요. 되도록이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요


모라: 관찰과 몰입은 ‘10’의 음악과 작업방식과도 많은 연관성이 있는 거 같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텐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텐: 뭔가 새로운 거 하고 싶네요. 텐은 라이브 공연하면서 살아있으니까 공연 계속하면서 계속 새로운 사운드 만들어 갈거에요.




있다+마르키도=‘10’은 두 사람의 음악적 결합 뿐 아니라 그 삶의 모습과 방식이 함께 섞여서 그들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들은 결성된 후 오랫동안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고, 아시아와 유럽으로 거처를 ‘이동’하며 삶을 꾸려왔고 그 안에서 얻은 모티브들은 앨범작업과 라이브 공연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앞서 밝혔듯이 이 인터뷰가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또한 그들의 포지션은 홍대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 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그 방법들이 단지 거점을 옮기거나 글로벌적인 것으로만 포장될 일이 아니다. ‘여기’의 문제들에 포획되지 않고 외부의 통로를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키워나감으로서 ‘10’의 음악과 활동이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새로움’과 ‘다양함’에 언제나 목말라 하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상품화’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10’이 구축한 새로운 영역이라는 것이 한눈에 쉽게 볼 수 있는 구조는 아닐 테지만, 요목 조목 그들의 음악과 활동을 찾아가다 보면(사이트를 참고해주세요) 그 여정들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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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무명생활자 mora  
*이글은 보일라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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